부처님께서는 대승사상에서 육바라밀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보시(布施) 바라밀이란,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저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베풀어라, 평생 착해지려고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착한 습관을 익히는 것의 첫 번째가 베푸는 것입니다.

둘째 지계(持戒) 바라밀이란, 부부와 친구지간은 인연이 있어서 만났으니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를 지키는 일입니다.

셋째 인욕(忍辱) 바라밀이란, 남남끼리 만났으니 뜻을 맞추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참는 버릇을 익혀야 합니다. 그것이 인욕입니다.

넷째 정진(精進) 바라밀이란 법문 듣는 것, 염불하는 것, 경을 읽는 것, 주력하는 것, 참선하는 것 등이 전부 정진입니다. 정진의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정진의 목적입니다.

다섯째 선정(禪定) 바라밀이란, 생각이 번뇌인데 변덕을 떠니까 그걸 다스려야 합니다. 내 머리에 불이 붙었을 때처럼 그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번뇌의 불을 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착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변덕을 떠나 생각을 자꾸 관찰해 보면 자기가 부족한 것이 항상 나타나는데, 그것을 다스리는 데에 기쁨을 느끼기 시작하면 거기에 여념이 없어서 항상 그 가운데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좁은 마음이 자꾸 넓어져서 거기에서 지혜가 생깁니다. 지혜가 생기면 그걸 자꾸 넓게 쓰게 됩니다.

여섯째 지혜(知慧) 바라밀이란, 앞의 다섯 가지를 잘 실천하면 거기서 지혜가 생겨 그걸 자꾸 널리 쓰는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를 실천할수록 가정에는 행복이 배가되어 찾아옵니다.

모든 법계 중생들 모두가 이런 실천행이 원만해져야 번뇌가 쉬게 됩니다. 여러분은 육바라밀을 실천하심과 동시에 항상 참나를 찾고 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육바라밀을 실천하시면서 “나”를 찾는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오며 가며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크게 의심하십시오.

 처음에는 동해 바다에 모래를 실어다 붓는 격으로 파도가 한 번 치면 없어지는 식이어서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쇠로 만든 소에 모기가 달라붙어서 뚫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뚫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송두리째 들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비유입니다. 그렇게 노력하시면서 육바라밀을 실천하시면 그게 무르익어서 확 뚫어질 날이 옵니다. 그렇게 번뇌를 녹이는 것이 열반적정에 들어가는 수행법입니다. 그것이 참선법이고 그것이 최고입니다.

염불을 하는 것은 우선 생각을 한 군데로 모으게 합니다. 금강경이나 대승경전을 읽으시는 것 역시 점차로 생각이 붙지 않게 들어가는 수행법입니다. 화두 최상승법은 이 두 가지를 다 초월하는 수행법입니다.

화두는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이 몸을 이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하고 의심을 크게 하시면 됩니다. 이론으로 아무리 머리가 터지도록 기억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번뇌가 쉬어야 하고 망식이 쉬어야 합니다. 관념의 세계를 다 초월해야 합니다.

중생들은 큰 부잣집에 살면서도 눈먼 아이와 같아서 갖가지 보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보지를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육바라밀 행도(行道)의 공덕을 짓는다면 온갖 때가 다 제거되어 마음이 단박에 청정해질 수 있습니다. 마치 병들었던 눈이 밝게 열림과 같고, 맑은 물과 깨끗한 거울에 갖가지 모양이 환히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중생의 마음은 거울과도 같아서 때가 끼어 있으니 모양이 제대로 비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