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  →   만공선사  →   전강선사  →   정일선사  →  능허거사

 

     전강스님은 전남곡성군 입면에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일곱살의 그와 젖먹이 여동생을 두고 세상을 떴다. 계모는 극악했다. 사랑에 굶주린 여동생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죽었다, 밥에 굶주린 소년에게는 사랑은 사치였다. 매일 계모에게 얻어맞았다 . 소년은 좀도둑질을 익혔다. 허기를 면하러 제 집과 남의 집 밥을 훔친 것이다. 들키면 또 다시 죽도록 얻어맞았다.

     12살 때 아비마저 세상을 떴다. 그러자 계모는 제 소생의 아들까지 내팽개치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어린 이복동생을 업고 친척집을 찾은 소년은 밥 한 술 얻어먹지 못하고 쫓겨났다.  너무나 서러운 나머지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죽으려 하기도 하였다.

     어머니 무덤에서는  '저승에 가고싶다'며 몸부림치며 울기도 했다. 계모의 집을 찾아 간 소년은 문 밖에 이복동생을 떼어두고 유랑에 나섰다. 그리고 사냥꾼, 조수, 풀무꾼, 가게 점원, 장돌뱅이 등 온갖 일을 하며 굶주림과 싸웠다. 그러다가 한 스님과 인연을 맺으며 절로 들어가게 되었다, 전강스님은 이 때무척 남다른 근기를 보인다. 제대로 된 공부룰 위해 해인사로 향한 것이다. 해인사 행자시절 그는 두 살 위의 한 사미와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그 사미가 해인사에 들린 아리따운 신식 여성을 보고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방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친형제 같던 사미는 한 줌 재로 변하였다. 그의 죽음은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삶에 대한 깊은 의문을 지니고 있던 전강스님에게 또 다른 깊은 상처였다. 이 때 어떤 노승이 즐겨 읊던 한 게송이 전강의 마음을 긁어 내렸다.

     

    도 닦는 사람은 어리카락 희기를 기다리지 말라.

    쑥대 속 무덤이 바로 소년의 무덤이라네.

     

    스님은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는 꿈을 꾸었다. 비명과 함께 깨어난 그는 생사의 문제를 극복하는 일이 인생 최대의 과제로 다가왔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를 수료한 뒤의 일이었다. 참선을 통해 수행해야만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말을 들은 전강스님은 참선을 하게 해 달라며 은사스님께 매달렸다.

     그러나 은사스님은 우선 경전 공부가 중요하다며 타이를 뿐이었다. 전강스님은 끝내 물러시지 않았다. 결국 무자 화두를 받아 정진에 몰입했다.그러나 상기병에 걸렸다.  머리가 뜨거워지더니 피가 입과 코 등 모든 구멍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왓다. 그러나 직지사 천불선원 제산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을 계속하였다. 예산 보덕사, 정혜사 등을 거치면서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음에도 용맹정진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 때의 경험을 후학들에게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전한다.

     죽음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떠돌던 전강스님은 고향 곡성 태안사 계곡의 징검다리를  한밤중에 건너고 있었다. 계곡을 씻어 내리는 물소리에 잠기는 찰나 몇 억겁의 먹구름이 씻겨 내렸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법당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었다. 한 스님이 크게 분노하며 전강스님에게 호통을 쳤다.

    "어허, 천지에 부처님의 몸 아닌 곳이 있는가? 내 어디에다 오줌을 누란 말이냐?"

    젊은 사자가 드디어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거칠 것이 없었다. 1923년 금강산 지장암의 한암스님이 전강스님에게 물었다. '육조 스님께서 본래무일물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내무일불이라 해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전강은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났다. 계속해서 용성.혜월.보월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전강스님은 만공스님을 찾아갔다가 더욱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계기를  얻었다. 만공은 당시 내로라 하는 선지식에게 견성을 인가받은 전강스님을 '네 깨달음은 절의 머슴으로 일하고 있는 저 불목하니보다 못하다.'며 내쳐버렸다. 이에 분심을 일으켜 다시 처절한 정진끝에 마침내 오도송을 토해내었다.

     

    어제 밤 달빛은 누각에 가득하고 창 밖에는 갈대꽃이 가을을 이루었네
    부처와 조사도 몸과 목숨을 잃었는데 물은 다리를 비치며 흘러오도다

     

    어느 날 밤 만공 스님이 하늘의 별을 보며 물었다.
    '하늘에 가득 찬 저 별들 가운데 어느 별이 전강 그대의 별인고?"

    전강스님은 갑자기 땅바닥에 엎드려 손을 허우적거리며 별을 찾는 시늉을 하였다. 선종 77대 법맥을 이은 것이다.  전강스님은 불과 33살의 나이에 천하의 불보사찰 통도사 보광서원의 조실로 추대되었다.

    전강스님은 수행에서는 누구건 봐주는 법이 없이 매섭기만 했다. 조주에게 제자가 물었다.
    '달마대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조주가 답했다. '
    '앞니에 털이 났느니라' 전강선사는 제자들에게 늘 대승경전의 요체를 담은 이 화두를 던져주었다.

    1975년 1월 13일
    '무엇이 생사의 고통인고? 할 뒤집어도 구구는 필십일이로다.라는 법문을 하고 그 자리에서 전강선사는 앉은채 열반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대낮이었으나 별은 여전히 순행하였다.

     

    도송  

    昨夜三更月滿樓   작야삼경 월만루
    古家窓外蘆花秋   고가창외 로화추
    佛祖高德喪神命   불조고덕 상신명
    潺潺流水過橋來   잔잔유수 과교래

    어젯밤 삼경에 달빛은 누각에 가득하더니
    고가의 창밖엔 갈대꽃 만발한 가을이로구나
    부처와 조사의 높은 덕행도 여기서는 신명을 잃었는데
    다리아래 잔잔히 흐르는 물은 다겁을 지나오는구나

     

    화두하는법 / 전강선사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니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진로를 멀리 벗어나는 것이 예사일이 아니니
    승두를 꽉 잡고 한바탕 지을지어다.
    한 차례 추위가 뼈 속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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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묻되,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 스님이 답하시되 "무(無)" 하셨으니, 이것이 '무자(無字)' 화두의 시초인 것이다.

    종문중(宗門中)에서 이 '무자'를 제일 많이 칭찬을 해놓았으니 '무자' 화두에 대해서 말씀해보면,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 스님만은 왜 "무(無)" 라고 하셨겠는가?

    이 '무자'에 대해서 있다 없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없다, 허무(虛無)다, 이와 같이 이리저리 두 갈래로 분별하지 말고 능소(能所)가 끊어지고 상대도 없이 다만 홑으로 "어째서 '무(無)' 라고 했는고?" 하고만 생각해라.

    여기에는 공(空)도 또한 거둘 수 없으며 유상(有相)·무상(無相)을 붙일 것도 없다. 필경 알 수 없는 의심 하나만이 남으니 이것만 추켜 들어라. "조주 스님은 어째서 '무' 라고 했는고?"

    만약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도리를 입껍데기로만 따져서 알았다고 하면 타일(他日)에 염라대왕의 철방을 맞을 것이다. 한번 조주 스님의 "무(無)" 라고 하신 뜻을 바로 보아야 생사해탈을 하는 법이다.
    삼세제불의 골수요, 역대조사의 안목이다. "무(無)" 라고 말할 때 이미 그 의지가 확 드러나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영특한 사람이면 당장 언하에 대오할 것이다.

    이 '무자' 화두에 대해서 별별 해석이 다 나와 있다. 혹자는 일체 명근을 끊어버리는 칼이다, 또는 일체를 열어주는 자물쇠통이다, 일체를 쓸어버리는 쇠빗자루다, 나귀를 매어두는 말뚝이다 등등의 한량없는 말들이 나와 있다.  

     

    그렇다. 나는 여기에 삼십 방을 주리라.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또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 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하셨다.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화두를 지어감에 망념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중생살이 전체가 망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화두가 잘 된다, 잘 안된다, 망상이 생긴다, 마음이 산란하다 등의 생각이 있으면 화두의 순일지묘(純一之妙)가 없게 되는 것이니, 일어나는 망념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상관도 말며 두려워도 말 것이다.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그리고는 그저 알수 없는 의심 하나만 간절히 간절히 일으킬 것이며, 없어지거든 또 일으키고 부지런히 거각하여 끊어지지 않게만 자꾸 이어주어라. 이렇게 오래오래 물러나지만 않고 해나간다면 견성 못할까 걱정할 것도 없는 것이다. 고인의 말씀에, "만약 능히 신심만 물러나지 않는다면 누가 견성성불을 못하리오(若能信心不退 誰不見性成佛)." 라고 하셨느니라.

    또한 공부를 지어감에 속효심(速效心)을 내기가 쉬우나 이는 절대 금물(禁物)이다. 이것으로 인해 마음이 급해지고 생각이 쉬어지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고 보면 화두는 점점 멀어지고 자리가 잡혀지지 않게 된다. 또 공부 지음에 깨닫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망념은 할 수 없거니와 '크게 깨달아야겠다' 라는 망념을 고의로 일으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좌선함에 눈을 감고 하는 수가 많은데 눈을 감고 할진댄 혼침(昏沈)과 무기(無記)에 떨어지기가 일쑤며, 또한 흑산하귀굴(黑山下鬼窟)에 떨어진다' 고 고인이 밝게 말씀하셨으니, 두 눈을 평상으로 뜨고 허리는 쭉 펴고 맹렬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알 수 없는 의심 하나만 깨끗 깨끗이 자꾸 일으켜 매하지 않게 할 따름이다.

    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다


    한 웅큼 버들가지를 거두어 잡지 못하여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걸어 두노라.

    불소(不少)한 허물을 옥난간에 걸어 둡니다.

    [펌http://kr.blog.yahoo.com/yangwon50/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