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  →   만공선사  →   전강선사  →   정일선사  →  능허거사

 

속성 송(). 속명 동욱(東旭). 법호 경허(鏡虛). 전주 출생. 9세 때 과천 청계사(淸溪寺)로 출가하여 계허(桂虛) 밑에서 5년을 보냈다. 1862년(철종 13) 한학(漢學)을 배우고, 기초 불교경론을 배웠다. 다시 계룡산 동학사(東鶴寺)의 만화(萬化)에게서 불교경론을 배우면서 제자백가를 섭렵하였다. 1879년 옛 스승 계허를 찾아가던 중 폭우를 만났으나 마침 돌림병의 유행으로 인가에 유숙할 수 없어 빗속에서 나무 아래 앉아 밤을 새다가 생사의 이치를 깨닫고 동학사로 돌아와 학인(學人)을 돌려보내고 조실방(祖室房)에 들어가 3개월 동안 면벽(面壁)하여 크게 깨달았다.

1880년 홍주 천장암(天藏庵)에서 용암(龍岩)의 법을 이은 후 천장암과 서산 개심사(開心寺), 부석사(浮石寺) 등에서 활동하였다. 1894년 범어사의 조실이 되었고, 1899년 해인사의 경전간행불사(經典刊行佛事)와 수선사(修禪社) 불사의 법주가 되었다. 또한 청암사(靑巖寺)에서 설법으로 방한암(方漢巖)을 대오(大悟)하게 하였으며, 1902년(광무 6) 범어사의 금강암마하사(摩訶寺)의 나한상개분불사(羅漢像改粉佛事)에 증사(證師)가 되었다.

1904년에는 안변 석왕사의 오백나한개금불사의 증사가 되었다가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후 박난주(朴蘭州)로 개명하고 머리를 기르고 유관(儒冠)을 쓴 모습으로 갑산·강계 등지를 돌아다니며 기행(奇行)을 남겼다. 1912년 4월 갑산에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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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콧구멍이 없다는 소리에 (忽聞人語無鼻孔)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頓覺三千是我家)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六月燕巖山下路)
일 없는 들 사람 태평가를 부르네(野人無事太平歌)

1881년 6월, 연암산 천장암의 구석방에서 1년여 치열하게 정진하던 경허 스님이 문 밖으로 떨쳐 나서며 부른 오도송이다. 당초 교학으로 이름 높던 경허 스님이 참선을 시작한 것은 1879년 여름. 환속한 은사 스님을 만나기 위해 전염병이 도는 마을에 들어선 스님은 죽음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학사로 돌아와 생사 문제 해결에 몰두했다. 자신에게 배우는 학인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에 구속되지 않고 조도(祖道)를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는 원력을 세운 스님은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칼을 턱 밑에 괴며 치열하게 정진했다. 잠을 이기고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바깥 출입을 금한 채 3개월간 화두와 겨루던 어느 날 ‘백천가지 법문과 헤아릴 수 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하는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한번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의 깨달음 이후 그것을 굳게 다지는 ‘보림’이 필요했다. 때마침 천장암에는 그의 친형 태허 스님이 모친 박씨를 모시고 수행 중이었다.

이듬해 스님은 서산 연암산 천장암으로 수행처를 옮기고 다시 한번 정진에 들었다. 깨달음의 세계를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 평도 안 되는 방문을 닫아걸고, 공양도 대소변도 모두 방에서 해결했다. 옷이라야 누더기 한 벌, 이가 들끓고 모기와 빈대가 물어대고 몸이 헐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구렁이가 들어와 무릎을 타고 오르는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자 구렁이가 스스로 기어나간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깨달음을 확고하게 한 스님은 문을 박차고 나와 오도송을 불렀다. 36세 되던 해였다.

백제 무왕 34년(633년) 만들어졌다는 천장암은 지금도 한적한 암자다. 가는 길도 쉽지가 않다. 서해고속도로 해미IC에서 내려 29번 국도를 타고 보령 방면으로 5㎞ 정도 가면 고북농공단지. 여기서 천장암(천장사로 돼 있음) 표지판을 따라 3㎞ 정도 가면 산길이 나타난다. 차에서 내려 10분쯤 걸으면 암자가 보인다. 새 건물이 생기기는 했으나 경허가 수행했던 법당과 법당 옆에 있는 작은 골방은 옛 모습 그대로다.

법당 안에는 경허 스님과 그의 제자인 만공 스님 영정이 걸려 있다. 천장암은 경허뿐 아니라 ‘경허 문하의 빼어난 세 달(月)’로 일컬어지는 수월, 혜월, 만공 스님이 수행하기도 했던 절이다. 절 오른쪽 능선에는 경허 선사가 즐겨 좌선했다는 제비 바위가 있다. 바위에 오르면 서해안 고속도로와 서해, 내포 평야가 내려다 보인다.

인근에 덕숭총림 수덕사를 비롯, 서해안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는 도비산 부석사, 구불거리는 소나무를 다듬지 않은 채 기둥과 들보로 쓴 사찰로 유명한 개심사, 바닷가 사찰 간월암 등도 경허 스님이나 만공 스님과 관계가 깊은 사찰이다. 또 가톨릭 성지이기도 한 해미읍성과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불도 지척에 있다.

  悟道頌    오도송
                                                  鏡虛禪師   경허선사 1849~1912
 
忽聞人語無鼻孔   홀문인어무비공   홀연히 사람에게서 고삐 뚫을 구멍 없다는  말 듣고
頓覺三千是我家   돈각삼천시아가   문득 깨닫고 보니 삼천 대천세계가 이내 집일세
六月鳶巖山下路   육월연암산하로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野人無事太平歌   야인무사태평가   들사람 일이 없어 太平歌를 부르네

 

   午睡   오수     낮잠
                                        鏡虛禪師  경허선사 1849~1912

無事猶成事   무사유성사   일 없음을 일삼아
掩關白日眠   엄관백일면  빗장을 걸어 잠그고 대낮에 낮잠을 자고 있는 데
幽禽知我獨   유금지아독  깊은 산 속 새들이 나 홀로인 줄 알고서
影影過窓前   영영과창전   창문앞을 어른어른 날면서 그림자를 비치네

 


 遊隱仙洞  유은선동    선동에 숨어 지내며
                                鏡虛惺牛   경허성우 1849~1912

山與人無語   산여인무어   산과 사람은 말이 없고 
雲隨鳥共飛   운수조공비   구름은 새를 따라 함께 날으네 
水流花發處   수류화발처   물 흐르고 꽃피는 곳
淡淡欲忘歸   담담욕망귀   아아 모든 것 돌아가 잊고져 하네

 

              偶吟    우음
                                    鏡虛惺牛   경허성우 1849~1912

風飄霜葉落   풍표상엽락   바람이 서리맞은 잎을 떨어트린다
落地便成飛   락지편성비   떨어지는 잎이 다시 바람에 날아간다
因此心難定   인차심난정   어쩔거나 이 마음 맡길 데 없어
遊人久未歸   유인구미귀   잎비 속에 길을 잃고 헤메이나니